지수의 체육시간
거친 숨을 내쉰다. 심장이 터질 듯 크게 요동치는 중이다. 방금 전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내뱉으며,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숙여 본다. 지쳤다.
땀 방울이 얼굴 전체를 타고 코끝으로 뚝! 뚝! 떨어진다. 그러다 한 방울의 땀이 신발 등으로 떨어졌다. 흙 덮인 신발 등은 땀이 떨어진 부분만 컬러가 된 듯 보였다.
신기함에 시선을 뺏긴것도 잠시, 발 끝으로 시선이 간다. 정확히 오른발 오른발가락 부위였다. 구멍이 난 것이다. 흙이 들어가 변해버린 양말 색깔은 더욱 눈에 띄었다.
"또 구멍났네.." 내 축구화였다. 방금 전까지 심장이 터져라 뛰었던 이유는 축구를 해서였다. 매번 본드로 붙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부모님께 축구화 한 켤레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때 지지 않았다. 글쓴이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눈치를 보고 말 못 한 것을 보면, 그리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구멍 난 축구화여도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는 것이 너무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열정을 떠올리면, 맨발로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눴다. 또, 웃음을 나눴다. 글쓴이의 유년시절은 무엇이 부족하면 무엇은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추억하며 글을 쓰는 것도 감사하다.
이런 추억이 없었다면, 오늘 주인공인 지수에 마음을 모른 척했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수의 포기
지난날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을 떠올리면, 아련하게 기억나는 불량식품처럼, 빛바랜 밴츠가 떠오른다. 오늘 주인공 지수가 앉아있는 곳이다.
지수는 밴츠에 앉아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이라도 보는 듯 집중한 채로 고개가 고정돼 있다. 지수의 시선에는 웃으며 뛰어노는 친구들이 보인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력으로 도망가는 친구다. 그 뒤를 먼지 날리며 따라다닌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공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수의 구슬 같은 눈동자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환영이 비춘다. 지수도 그 모습이 재밌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흥분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정신없이 뛰어놀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친구는 지수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젓는다. 입속에 하얀 치아가 전부 보일 듯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 지수에게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함께 놀자는 제스처였다. 친구도 흥분된 상황에 지수의 상태를 깜박한 듯하다. 방금 전까지 해맑던 지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콕! 찌르면 눈물이 쏟아질 듯 울상이 되어 간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보인다. 그러면서, 지수에 입에서 나지막이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난 못해.."
지수의 탄생
지수가 태어난 날 부모님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기뻐했다. 어찌도 요목조목 이쁘던지,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 볼이 닳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뽀뽀를 해댄다.
그렇게 지수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어느덧 지수는 돌이 되었고, 걸음마를 할 시기가 되었다. 지수의 부모님은 온통 지수의 걸음마에 집중돼 있었다.
음식도 사랑으로 먹이고, 마사지도 사랑으로 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지수의 부모님은 이상함을 느낀다. 아이가 걸음마를 해야 하지만 전혀 낌새가 없던 것이다.
다리를 잘 못 움직이듯도 보였다. 지수의 부모님은 덜컥! 겁이 났다. 급하게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심장 박동이 잦아지지 않는다.
아이를 안고 오며, 오만가지 부정적인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의사 선생님의 표정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견을 기다린다.
그때, 들려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지수 어머니를 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하늘이 노랗다는 게 이런 것인가? 두 귀를 의심해야 했다.
몇 번이고 되물어야 했다.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는다. 수도 배관이 터진 듯 눈물만 하염없이 솟구쳤다. 아이의 증상은 강직성 양마비성 뇌성마비 라고 한다.
신경계 근육이 조절되지 않아 혼자서는 서있기도 힘든 병이라고 했다. 그렇게 지수는 걷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지수의 부모님도 바로 집으로 걸어가지 못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
글쓴이는 학창 시절 많은 과목 중 체육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같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지수는 가장 싫어하는 과목일 수 있겠다.
항상 혼자 밴츠에 앉아 행복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지수에겐 희망일까? 그렇다고 언젠간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체육시간에 느끼는 자괴감이 지수의 성장만큼 함께 자라날까 걱정이다.
지수의 엄마도 아이의 하루 시간표를 본다. 또, 아이를 살피기 위해 학교도 매번 찾아간다. 지수의 엄마는 어느 날 체육시간 밴츠에 앉아 울상을 한 지수를 보았다.
엄마는 지수의 돌 무렵, 의사 선생님께 사형선고를 받은 날과 같은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더욱이 가슴 아픈 것은 이런 날이면, 지수는 집에 와서도 하루종일 운다.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가능하다면, 단 하루만 이라도 자신의 다리를 빌려주고 싶을 것이다.
악재는 한 번에 온다
지수의 엄마는 하늘을 원망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매일 같이 자신의 마음을 죽여가며 눈물 흘리는 딸이다. 지수의 다리 치료비로 집안 형편이 기운 것도 오래되었다.
설상가상.. 코로가 19가 지수의 가정을 덮쳤다. 건설현장에 근무하던 남편마저 실직하게 된 것이다. 지수네 가정은 눈물을 멈출 수도, 치료를 멈출 수도 없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당장은 친척집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정도다. 이 상태로는 6개월마다 교체해줘야 할 지수의 교정기를 마련한 방법이 없다.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지수의 부모님은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세상에 몸을 던져보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지수는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다음날 지수의 3교시는 체육시간이다. 어깨에는 책가방을 메고, 마음에는 무거운 짐을 메고 학교로 향한다. 또다시 눈물 흘리러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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