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닿지 않는 곳
딸깍! 문이 열렸다. 활짝 열린 문은 내 양 어깨가 닿을 듯 폭이 좁은 문이다. 안쪽 벽을 더듬어 전구 스위치를 찾았다. 조심스레 눌러진 스위치와 함께 눈이 부시게 전구가 밝혀졌다.
오늘 내가 잠을 이룰 방이다. 2,3평 남짓한 방안은 성인 한 명이 누우면 머리가 닿을 듯했다. 또 창문도 없었다. 이런 방에서 지낸 지도 4개월 째다.
20대 중반에 사업 실패로 월 7만 원짜리 고시원방에서 머물렀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고집부린 나 자신을 자책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무런 결과 없이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말이다. 갖 군대를 전역해 당장 전쟁도 두렵지 않을 용기로 선택한 실패였다. 의기양양했던 모습은 온대 간데없었다. 그렇게 쳐진 상태로 방에 눕는다.
그때, 갑자기 울리는 비상벨. 나에게만 들리는 비상벨이었다. 뱃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꼬르륵~!" 해일처럼 밀려온 우울감 때문인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통 김밥
이 당시, 매일 김밥천국을 들렸다. 한 줄에 천 원이던 김밥 한 줄이 유일한 나의 하루 식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생활을 반년이나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 3끼도 부족할 나이 아닌가? 매일 고시원 앞 놀이터에서 바나나를 까먹듯, 은박지를 벗겨가며 김밥을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썰지도 않고 통으로 구매했다. 그냥, 앙! 물어 잘라먹는 게 더 맛있더라.
누구나 힘든 시절 트라우마로 남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지겹게도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체질이 이상한가 보다. 아직도 김밥을 좋아한다. 또, 지금도 통으로 먹는 게 더 맛있다.
죽을 듯 힘들고 자존심이 뭉개진 20대 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신감 넘친 청년의 울음소리를 입안 가득한 김밥으로 감춰준 고마운 녀석이다. 그래서 지금도 질리지 않는 친구가 되었나 보다.
이보다 더한 상황도 이겨내고 성공한 분들에게 부끄러운 사연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배고픔이 얼마나 처절한 현실인지 모두 알 것이다.
식욕은 절제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단절된다면 어떻겠는가?
허기진 아이들
성인도 버티기 힘든 배고픔을 아이들은 버틸 수 있을까? 우연히 알게 된 현실에 깜짝! 놀랐다. 지금처럼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허기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던 것이다.
힘든 시절을 겪어본 적 있거나, 배고픔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다면, 잠시만 집중해 보기 바란다. 지금부터 볼 내용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현재 국내 허기진 아이들(결식아동)이 약 30만 명 이상 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인용하였으나, 더 늘어나고 있는 상태라는 게 심각하다.
뉴스에서는 한국이 저출산 국가라고 연신 보도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결식아동들은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배고픈 현실에 처해져 있다.
보통, 모두 알고 있는 소년소녀가장, 한부모 가정등이다. 잠시 상상해 보자. 배고픈 아이가 넘어져 아파서 울먹이는 얼굴로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바닥에 앉아 움츠려 우는 모습이 다친 병아리처럼 보인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동요가 일었는가? 그렇다면, 지금 감정을 붙잡고 계속 읽어 내려가자. 아래에는 실제 결식아동들의 사례를 설명했다.
결식아동 사례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빠와 3남매가 함께 살고 있다. 큰 형이자, 큰 오빠인 현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철이 들었다.
본인도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주변 어른들이 말하는 물가가 비싸다는 소리를 귀담아듣기 때문이다. 아빠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운 현호다.
동생들의 끼니를 챙기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빈 냉장고 안을 보고 걱정이 앞선다. 찬장을 열어본다. 몇 개 남아있는 라면이다.
3명이 먹어야 하는 식사이지만 라면 한 개만 집어 들었다. 그렇게 끓인 라면을 동생들에게만 나눠준다. 귀여운 여동생이 "오빠는 왜 안 먹어?"라며 묻는다.
현호는 웃으며, 오늘도 배가 안고프다고 거짓말을 한다.
※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저소득층 가정은 전체 소득의 40%를 식비로 지출한다.
결식아동 사례 2
반지하 단칸방 할머니와 손녀가 살고 있다. 사람의 발길 닿지 않는 이곳은 작은 택배 상자조차 오지 않는 곳이다. 할머니가 일을 나갈 때면 집에 혼자 있는 손녀이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끼니도 챙기지 못한다. 할머니는 타는 마음에 혼자라도 챙겨 먹으라고 타일러 본다. 하지만 손녀는 혼자 먹는 게 굶는 것보다 싫다며, 오늘도 배고픔에 신음하다 잠들었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작은 단칸방 한가운데 움츠려 잠든 손녀가 안쓰럽다. 녹록지 않은 형편에 밥도 먹지 않은 손녀 모습이 눈시울이 붉게 만든다.
맛있는 게 집에 있으면 알아서 잘 챙겨 먹을 텐데.. 잠든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가슴이 미어진다.
※ 자녀가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39.1%
2. 밥 또는 반찬이 없어서 20.8%
3. 시간이 없어서 9.9%
4. 혼자 먹기 싫어서 8.5%
5. 기타 사유 21.7%
※ 출처: 대구여성가족재단(2018)
결식아동 사례 3
오랜 투병생활로 생활고에 시달린 지도 오래다. 악화되는 병세에 방에만 누워있어야 하는 엄마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못 먹어서인지 또래보다 작은 체구가 마음이 쓰인다.
어린아이가 뭐가 그렇게 힘들일이 많은지, 처진 어깨로 다닌다. 안쓰러운 마음에 딸에게 묻는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돌아오는 답변 없이 정막이 흐른다.
딸은 매일 아픈 엄마가 속상하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착한 딸인지 엄마 걱정뿐이다. 눈물로 잠든 날을 새아릴수가 없다.
힘겨운 듯 누워있는 엄마를 보니,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애써 눈을 피하고 돌아섰다. 뒤에서 들어오는 엄마 목소리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딸은 먹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몸이 아픈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없다고 거짓말을 하려다 속마음을 내뱉을까. 말없이 고개만 가로젓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읽고 내려왔다면, 그것만으로 당신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부족한 글 솜씨에도 아이들이 안타까워 읽고 내려왔으니 말입니다.
핸드폰만 열면 재미있는 영상들이 줄을 지어있는데, 그 시간을 포기하다니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오늘 글은 작은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소개하지 못한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족한 필력에 아이들의 어려움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정도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점심시간 식당에 가면 대부분 한 끼 식사가 1만 원 웃돕니다.
오늘 같은 날 2만 원짜리 푸짐한 식사를 했다 생각하고, 1만 원은 나눠보는 게 어떠실까요? 마음만 먹는다면, 숟가락 드는 일보다 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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